내인생의 책

한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책을 엄선하여 소개합니다

첫 페이지를 펼 때와 맨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다섯 시간 만에 그렇게 되는게 뭐가 있을까요? 저는 책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유영미 | 갈라파고스
    저는 긴급구호 현장 식량 담당인데, 올해 전세계적 금융위기, 식량위기로 150만 명에 대한 지원을 접어야 했어요. 그 150만 명은 하루 한 끼로 겨우 연명하는 사람이에요. 이미 벼랑 끝에 와 있는 사람을 밀쳐버린다는 느낌에 너무 가슴 아프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식량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죠.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이걸 읽을 때 분해서 손이 막 덜덜 떨렸어요. 그리고 <굶주리는 세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세상에는 60억 인구를 모두 뚱뚱하게 만들 수 있는 식량이 있다면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식량담당관이 어린 아들과 ‘식량은 많다면서 왜 굶주려?’와 같은 질문을 주고받는 이야기거든요. 단숨에 읽을 수 있으면서도 무게가 느껴지는 책이에요.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식량 문제에 대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될 거에요. 저는 이런 책들을 보고 이론을 공부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식량 정책을 공부하러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 백선희 | 마음산책
    피에르 신부님을 소개합니다. 정말 매력남이고 프랑스의 신부님이세요. 굉장히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기득권을 버리고 사제가 되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후에는 엠마우스 운동이라는 노숙자를 위한 사회 운동을 하신 분이에요. 제가 월드비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요, 여기에서 말하는 이 한마디가 늘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있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굉장히 큰 기준이 되요. 뭐라고 하셨냐면 ‘타인 없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우리는 그 둘 가운데에서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월드비전 들어가기 전에 우연히 서평을 쓰게 되어 읽게 되었는데, 그때 이 신부님이 저에게 화두처럼 준 이 한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사제로서, 사회 활동가로서, 같이 있는 동시대 사람들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우리한테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기장, 고해성사 같은 책입니다.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책이고요, 세상에 우리와 같이 사는 사람 중에서 이렇게 멋진 사람, 그 한 사람을 소개하는 그런 책입니다.
    단순한 기쁨
  • 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 김인순 |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책이에요. 근데 사실 자살을 권한다는 게, 아무리 책이지만 내키지가 않잖아요.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 작가인데, 이 작가가 대단히 유머러스한 친구에요. 우울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책이 절대로 아니에요. 이 책은 문장이 거의, 한 문장이 한 줄도 안 될 만큼 아주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거기에서 정곡을 찌르는 유머가 있고요. 집단으로 자살여행을 갔다가, 사람들이 긴 여행을 하면서 삶은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롭고 살만한 것이로구나 하는걸 느끼는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어찌나 유머러스하고 가슴 따뜻한지, 진짜 그런 여행이라면 자살여행이라도 할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이 작가를 한 명 만나면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작가들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말 재미있고 좋은 책입니다. 아주 신나게 읽은 소설입니다.
    기발한 자살 여행
  •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
    프랭크 맥클러스키 | 이종철 | 북섬
    삶과 죽음을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는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철학 교수의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 책 뒤로 갈수록 굉장히 중요한 생각거리를 주시더라고요. 사실 긴급구호를 보통 소방관에 많이 비유를 해요. 조금 위험해도,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도, 우리는 들어가서 불을 꺼야 하고, 특히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때는 우리의 목숨도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자기를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불길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걸 다시 한번 꺼내서 생각하게 했어요.
    그리고 이 철학교수가 대가란 여러 가지 시련과 여러 가지 잘못된 선택, 여러 가지 자기를 단단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하나의 크리스탈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굉장히 고개가 끄떡여졌어요. 내가 이 분야에 대가가 되려면 실수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이런 나쁜 결정이나 두려움, 비겁한 결정도 때에 따라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구나, 그러면서 나중에 조금 더 좋은 결정을 하게 되고, 좀 더 다같이 모두에게 좋은 결정을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책입니다.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 이순희 | 사회평론
    <행복의 정복>이 사회평론에서 다시 나왔는데, 물 흐르는 듯한 번역이란 게 이런 거구나, 역자에게 고맙다,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책이에요. <행복의 정복>. 이것만 읽으면 행복을 정복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요. 자기가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정체가 무엇인가? 자기가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 책이에요. 정체를 알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는 행복이 되는 것이잖아요. 이 책은 여러 번 읽었는데 역시 고전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달콤하지만 딱 먹어보면은 바닷물과 같이 더 목이 마르게 하는 책들 사실 많잖아요. 이거는 딱, 아 이게 샘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고전은 20대 읽었을 대와 30대 읽었을 때, 40대 읽었을 때 다르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책이에요. 이건 앞으로도 한 3년마다 반복해서 읽을 책이 아닐까 생각해요.
    행복의 정복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C7%D1%BA%F1%BE%DF&sm=top_hty&fbm=1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

제 서재는요, 사고뭉치에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곳이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이 방에서 책도 썼고,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여기서 꾸고 있어요. 여기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이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산이 있고, (뒤에도) 산(사진)이 걸려있고.... 책과 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모여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딱 한 군데 이야기하라고 하면, 바로 여기, 사고뭉치입니다.

“한비야 팀장님 책 읽을 시간 있으세요?” “당연하죠"

제가 책을 사러 가면, ‘책 읽을 시간 있으세요?’ 이렇게들 물어보세요. 당연히 있죠. 저는 일부러 차를 안 사요. 지하철 타고 다녀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어요. 직장까지 왕복 한 시간 반은 책 읽는 시간이에요. 해외에 다녀도 시간 있어요.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 이런 자투리 시간에 읽는 책만 해도 일년에 20권은 되는 것 같아요.

다섯 시간 만에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책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 이유는, 책은 전 인류의 지혜잖아요, 독서는 그 지혜의 보고에 한 개인이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이고요. 빨대만 꽂고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가 세상의 지혜와 만날 수 있는……책 말고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첫 페이지를 펼 때와 맨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다섯 시간 만에 그렇게 되는 게 뭐가 있을까요? 저는 책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책이 있어서 평생 심심하다는 말은 이제 안 하겠구나

실은 어렸을 때는 책을 설렁설렁 읽었어요. 숙제 내주면 읽고, 독후감 써오라 그러면 언니 것 베끼다 맞고 그랬죠. 사실 ‘책이 있어서 내 평생 심심하다는 말은 이제 안 하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에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딱 우리 눈높이에 맞는 100권의 독서 목록을 주셨어요. 보통 100권의 목록을 보면 ‘니체’, <에밀>같이 고등학교 1학년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지겨운 책들이 들어있잖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정말 우리한테 딱 알맞은, 도서관에서도 금방 구할 수 있고 읽고 바로 돌려볼 수 있는 그런 책을 권하셨어요.
그런데 또 제가 그 책을 다 살 수가 없잖아요. 비싸기도 하고. 그 때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제가 도서관에만 가면 ‘비야 왔구나’ 하시면서 책 찾는 것도 도와주고, 대출된 책이 반납되면 우리 반까지 와서 말해주시고…… 사실 그 선생님 덕분에 책을 다 읽었죠. 그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면 일생의 은인인 것 같아요.

<1년에 100권 읽기 운동본부>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아가며 일년에 딱 100권을 읽고 났더니 평생, 이렇게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일년에 100권 읽기를 거의 매년 했고요. 사실 일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것은, 많다기 보다는 늘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 정도, 그리고 편식하지 않고 두루 읽을 수 있는 정도에요. 그리고 누군가 ‘뭐 재미있는 책 없어?’ 하고 나한테 물을 때 재미있는 책을 권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긴급구호 팀장으로 정말 가슴 뜨거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 이외에 또 다른 가슴 뜨거운 삶이 있다면 책을 쓰고, 읽고, 그리고 권하기에요. 책을 권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좋은 책을 서로 권해서 읽는, <1년에 100권 읽기 운동본부>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제가 본부장 했으면 좋겠어요.

편식하지 않는 독서

그런데 보통 권하는 목록을 보면 너무나 딱딱한 책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독서를 밥상이라고 생각해요. 주식도 있고 부식도 있고, 그 다음에 후식도 있고 간식도 있고. 주식으로 읽어야 되는 책 중에는 어려운 책도 있죠. 책상 앞에 앉아서, 줄 치면서 머리를 쓰면서 읽는 책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반찬, 그 중에는 맛있는 것도 있지만, 몸에 좋아서 먹는 것도 있는 것처럼, 다양하겠죠. 후식처럼 달콤한 책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건 영양가도 별로 없고 살만 찌고 그런 책이에요.
그런데 주식같이 딱딱한 책만 권하면 재미없잖아요. 어떻게 맨날 밥만 먹고 살아요? 국수도 먹고, 만두도 먹고 반찬도 여러 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엄마가 꼭 먹으라고 챙겨주는 영양가 있는 음식도 먹는 것처럼 좀 골고루 권해주면, '공부에 도움이 되거나 보기는 싫은데 봐야 한다', 이게 아니라 '재미있게 읽으면서 저절로 지식과 교양을 쌓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알게 될 거에요. 이렇게 골고루 재미로 읽은 책이 경험의 스펙트럼을 확 넓혀주게 될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꼭 먹어야 하는 거, 좋아하진 않지만 꼭 먹어야 되는 것도 세상에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돼요. 아니면 이빨 다 빠져요, 말랑말랑 한 것만 먹으면.

책을 혼자 읽고 끝내면, 가슴이 터져서 살 수 없어요.

예전에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사람들에게 책 좀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해서 모은 100권으로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제가 있던 방 번호를 따서 419 도서관이요. 두꺼운 대학 노트가 꽉 찰 정도로 대출 장부가 찼었어요. 지금 우리집은 독바위 도서관이에요. 책 빌려주고, 연체하면 벌금 받고. 그러니까 (보스톤에 유학을 가서도) 어차피 제 주위에는 누군가가 보내거나 내가 구해오거나 해서 책이 모이겠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 좋다고 끝내면, 가슴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요. 누구한테라도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런데 보스톤에는 지금은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단 한 명도 없지만, 가면 금방 사귀겠죠? 그러면 좋은 책, 정말 재미있는 책, 마음에 남는 책을 권하면 아무리 바쁜 유학생들도 다 읽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스톤에도 또 제 주변에는 도서관이 생길 거에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삼성, 우주범선을 만들라"
개미’ ‘신’으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난데없이 삼성에 우주범선 제작을 주문했다.
자신의 소설 ‘파피용’에 나오는 것으로, 길이가 32㎞에 이르고 14만4000명을 태울 수 있는 대규모다. 삼성 사보팀과 지난 9일 만난 그가 던진 엉뚱한 주문이며, 이 내용은 삼성의 사보‘삼성 앤 유’9/10월호에 실렸다.

창의력에 관한 한 전세계적으로 공인을 받은 베르베르가 우주범선을 거론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노아의 방주가 그랬듯이 우주선은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파괴와 인구 증가는 지구를 파멸로 이끌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른 행성에 인류 문명을 건설해야 하는 우주 정복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미래를 내다보고 창의력 있게 움직여줄 것을 바란 셈이다.

첨단 가전제품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고 자신을 소개한 베르베르는 삼성 제품에 대한 애착도 보였다. 그는 “TV만 해도 아들 방과 사무실 서재에 있는 TV, 거실에 있는 대형 벽걸이 TV 등 삼성 제품이 3대나 된다”며 “블루레이DVD시스템과 오디오, 휴대폰도 삼성제품”이라고 했다. 일본 제품보다 한국 제품을 좋아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삼성은 베르베르와의 인터뷰를 삼성의 사보 ‘삼성 앤 유’9/10월호에 싣고, 15일에는 삼성 임직원 전체가 사용하는 사내 인트라망‘마이싱글’ 배경화면을 베르베르의 주요 발언을 보기 좋고 알기 쉽게 시각화해 꾸몄다.

조직의 창의력을 배가할 수 있는 팁도 줬다. 베르베르는 “상상력은 거듭되는 훈련과 습관이 중요하다”며 “상상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했다. 창의력을 위해 매일 새로운 것을 한 가지씩 시도하라고 권했다. 지식이 많다고 상상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며, 새로운 것을 넣으려면 가방 안을 비우듯 (지식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룹 차원에서 창의적 조직 꾸리기에 한창인 삼성이 베르베르로부터도 한 수 배운 셈이다. 이 밖에 베르베르는 자신이 삼성 연구원이면 나무로 된 컴퓨터태양열로 충전되는 전자제품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m.com

안철수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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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대학생때는 가능한 하나라도 더 많은 분야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6일 오후 4시 KAIST 태울관내 미래홀.

강당을 가득 메운 300여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KAIST 안철수 교수의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라-전문가에게 필요한 5가지 자질'을 주제로 한 특강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안 교수는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 자기가 아는 것을 제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 긍정적인 사고방식, 평생 학습, 자기 한계를 넓히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5가지 자질로 꼽았다.

안 교수는 "예전에는 상식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특정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 아닌 시대"라며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혼자서 많이 알기만해도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이젠 전문지식에 설명능력이 합쳐져야만 전문가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며 "설명능력이 떨어지면 전문능력도 쓸 수 없다. 혼자서 세계수준의 전문가라고 자부해도 팀원이나 주위에서 보면 실력이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특정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췄다는 일본 도요타의 'T'자형 인재를 설명한 뒤 "여기에는 다른 사람과의 팀워크는 강조가 안되고 있다. 이는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의 전문가상이지 한국의 전문가상은 아니다"라며 "한국의 전문가상은 전문성과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 설명능력까지 포함된 'A'형 인재상이 더 적합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잘 안되는 시기를 얼마나 잘 보내느냐'가 인생의 핵심으로, 그렇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며 "어려운 시기는 현실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한다"라고 조언했다.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 청중들은 안 교수에게 '대학생일때 한번쯤 경험해보아야 할 것',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삶의 목표' 등 평소 궁금해하던 사안들을 묻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잘할 수 있는 일은 시도를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기에 학창시절에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책은 요약본은 절대 읽지 말고 본문을 읽고, 50권의 책을 읽더라도 책 읽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깨닫고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또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를 가져야 성공했다는 것은 사회적 잣대의 성공일뿐이다"라며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에 성공의 정의를 스스로 세워야한다. 사회적 성공을 한 사람들이 불행해진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기만의 성공의 정의를 안가져서 그렇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니 불행해 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지독점]
심은하와 정호영이 직접 털어놓은 ‘결혼불발 이유, 그 진실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은 저를 속였어요‥ - 은하를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결혼식을 불과 이틀 앞두고 돌연 결혼 취소를 발표한 톱스타 심은하가 “연예계를 완전히 떠나겠다”며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결혼발표-연기-결별-재결합설’로 이어지는 결혼스캔들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심은하와 정호영씨가 결혼 불발에 얽힌 저간의 사정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못한 둘 사이의 숨겨진 갈등과 뒷이야기.

11월3일 이른 아침, 심은하의 집을 찾아간 기자는 인터폰을 통해 그녀의 부모와 먼저 접촉했다. 심은하의 결혼불발에 관해 그녀의 부모와 몇마디 대화가 오가던 중 인터폰이 툭 끊어졌다. 재차 초인종을 눌렀지만 묵묵부답.

그런데 잠시후 심은하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오더니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오늘 한번 속시원히 다 밝혀봅시다. 기자가 있는 데서 (왜 우리 딸이 결혼을 못하게 되었는지) 다 밝혀 보자고요. 정회장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것 아닙니까. 정회장에게 이곳 놀이터(심은하 집 인근에 위치함)로 오라고 했어요”라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딸의 일 때문에 부모가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심씨는 애써 괴로운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오전 9시, 정씨가 도착했다. 심은하 부모가 “(집)안에 은하가 있으니 한자리에서 직접 확인하자. 왜 결별하게 되었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 이 참에 탁 터놓고 얘기해 보자”며 기자와 정씨를 함께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심은하의 집 1층 거실. 결혼스캔들의 두 당사자인 심은하와 정호영씨, 그리고 심은하의 부모까지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취재는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뜻밖에 만들어진 자리에 심은하는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2층에서 내려온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물끄러미 정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씨는 시선을 아래쪽으로 두고는 손에 든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은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 어색함을 깨기 위해 기자가 심은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스포츠신문을 보니까 두 사람이 재결합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맞는 말인가요?

“재결합이요? 저도 저 사람(심은하는 줄곧 정씨를 ‘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이 ‘은하를 잊지 못한다’고 한 기사를 봤어요. 마치 제가 무슨 미련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돼있더군요. 하지만 재결합 같은 건 절대 없을 거예요. 이미 끝난 일이거든요.”

- 파혼이유가 심은하 부모님들 반대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사실인가요?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예요.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저였어요. 그동안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이 결혼을 반대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결정은 제가 했어요. 결혼은 다른 누구보다 당사자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

- 그러면 당당하게 그런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그랬어요?

“지금도 저는 솔직히 이런 자리가 싫어요. 설사 제가 저 사람에게 속아서 만나왔더라도, 바로 제가 만났던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한테는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 사람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저 사람 가족을 생각해서도 그렇고요. 무엇보다도 저 사람의 아이들을 생각해서 말을 안했어요. 누가 옳고 그르건 어쨌든 모두에게 망신이고 피해잖아요. 저 하나만 망신당하고 말면, 세월이 지나가면 다 잊혀져요. 하지만 저 사람은 아들들도 있고 노모도 있어요. 제가 입을 열면 그 사람들이 다 망신을 당하잖아요. 그냥 저 혼자만 속을 끓이고 감내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의 긴장된 모습도 잠시, 심은하는 막혔던 말문이 터진 듯 그간의 사정이며 심정을 소상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약 그녀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거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했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정씨가 즉각 반박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것이 오히려 자기 말에 대한 설득력을 더 보태주는 정황이라 생각했는지 그녀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 속다니, 뭘 속았다는 건가요?

“아주 많이…, 아주 많은 것을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심은하에 따르면 그녀가 정씨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 <텔미썸딩>을 촬영하던 99년. 한 모임에 나갔다가 후배의 소개로 그 자리에 동석한 정씨를 알게 됐다. 후배는 그녀에게 “서른일곱살 된 정태영씨”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리라 심은하는 그 후배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초면이지만 말쑥하고 안정돼 보이는 차림새에 호감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 정회장 나이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달라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런 문제인가요?

“만나고 나서 서너달 됐을까요? 영화 촬영장에서 어떤 분이 저 사람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서른일곱이 아니라 마흔아홉이고, 이름도 정태영이 아닌 정호영이라고요. 깜짝 놀라서 촬영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저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죠. 저 사람이 미국영주권을 보여주며 63년생임을 증명(?)했고, 이혼남이라는 사실까지 털어놓았어요. 나이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품지 않았어요. 이혼남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사랑하게 된 이후 ‘숙명’이라 여기며 마음을 추스렸죠.”

- 그러니까 이름과 나이가 다 사실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제가 말하는 것보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게 낫겠네요.”

기자는 심은하에서 정씨에게로 질문을 돌렸다. 정호영씨의 답변.

“그래요. 처음에 이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게 속였어요. 이름도 속이고, 나이도 저의 ‘한국나이’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이혼소송을 하는 것도 속였어요. 그때 처음 만났는데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은하가 나를 다시는 안 볼 것 같아서 속였어요. 이제 됐어요?”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의 나이였다. 세간에 줄곧 그의 나이를 놓고 말이 많았던데다 다른 것도 아닌, 어떻게 나이를 속일 수 있었을까 의아했다. 가령 지난해 결혼설이 나올 때 정회장의 나이는 49세로 알려졌지만 올해 결혼이 발표될 때는 39세로 보도됐다.

- 나이를 어떻게 속였다는 것인지, 그리고 ‘한국나이’는 또 뭔지 궁금하네요. 여기 심은하씨와 가족들도 있으니까, 정회장님 정확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아홉입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그는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다.

“지금 제 나이를 저 혼자서 이렇게 얘기하면 혹시 거짓말이라고 할지 모르니까, 제 나이를 잘 알고 있는 다른 기자들을 모두 불러모아서 함께 얘기합시다.”

자신의 나이에 관한 진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그동안 자신을 취재했던 기자들을 불러 확인시키자는 얘기였다. 자기 나이를 자기가 입증하지 않고 기자들을 불러 확인한다니, 기자도 그랬지만 심은하 가족 또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다시 심은하에게 질문을 돌렸다.

- 정회장 본인 입으로 저렇게 딱 잘라서 서른아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쉬었다.

“서른아홉이라…, 저 사람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기가 서른아홉이라고 하네요.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믿었어요. 한국호적이 잘못돼 있다면서 미국영주권을 보여주면서 1963년생이라고 하니까. 그러면서 한가지 사실을 더 털어놨어요. 자기가 이혼남이라는 거죠. 어떤 여자가 그 말에 충격을 받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제가 이미 저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후였어요. 그래서 ‘이게 다 숙명인가 보구나’ 생각하곤 스스로 마음을 추스렸죠. 나이도 그렇고 이혼남이라는 사실이야 내가 문제삼지 않으면 되니까요. 또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저 사람이 미국영주권에 맞춰 호적을 고쳤다며 자기 호적등본을 건네줬어요. 보니까 64년생으로 돼 있더군요. 저는 저 사람을 굳게 믿었고 영주권과 호적을 믿었어요.”

- 그런 믿음이 있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된 건가요?

“작년 11월에 제가 저 사람하고 미국에 가는 게 기사로 터졌잖아요. 그 동안 가족들, 특히 부모님은 ‘믿을 수 없고 의문 투성이의 사람’이라며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저 사람을 믿었고 64년생이라고 고친 호적을 믿었어요. 그 호적을 근거로 부모님을 설득했고, 부모님도 나이에 대해 조금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고쳐서 가져온 호적을 믿었죠. 그런데 신문보도를 본 부모님께서 저 사람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떼어본 호적에는 54년생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 아니 그러면, 정회장이 호적을 고쳤다는 얘기인가요?

“직접 물어보세요. 그걸 고친 당사자니까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어요?”

기자가 다시 정씨를 향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은하에게 미국영주권에 있는 나이(63년생)를 얘기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호적을 고쳤고 그걸 갖다줬어요. 63년생인 나이를 64년생으로 바로잡아서 호적을 갖고 왔다고요. 그때 은하 부모님께도 다 말씀을 드렸어요. 무슨 문제될 게 있습니까?”

- 호적을 고쳤다는 것은, 그러니까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서 고쳤다는 얘기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그냥 고쳐서 갖다 줬다니까요. 관공서에서 한 것은 아니고, 우리 사무실에서 고쳤어요. 사무실 직원한테 호적을 떼어 오라고 해서 그 직원에게 64년생으로 고쳐달라고 했어요.”

-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개인이 마음대로 호적을 고칠 수도 있나요?

“제가 처음에 은하를 만났을 때 나이하고 이름을 속였어요. 처음에 속인 것은 인정해요. 그런데 은하 아버님이 저한테 ‘나이가 명확하지 않으니 호적을 떼어 오라’고 해서 제가 임의대로 영주권 나이에 맞춰 고쳐서 갖다 준 거예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 우리 직원에게 ‘내가 여자에게 서른여덟이라고 했는데 그 거짓말이 탄로날 것 같으니 고쳐달라’고 했어요.”

그가 이런 말을 하자 심은하는 갑자기 “이게 바로 저 사람 실체예요”라고 말했다. 그녀와 부모들은 이날 처음 정씨가 자기 사무실에서 임의로 호적을 고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정식 절차에 따라 고친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했다.

심은하측이 나이를 둘러싼 불신이 ‘결혼 취소로 이어진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해 정씨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 진짜 호적대로라면 54년생으로 돼 있으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겠네요?

“아뇨. 그 호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호적에 나이가 잘못 올라간 거예요.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사 때문에 그렇게 올라갔어요. 저도 사실 제가 언제 태어났는지 몰라요. 그것은 내 개인적인 가정사예요. 가정적인 문제 때문에 그렇게 올라가게 됐어요.”

- 초등학교 입학 시기 같은 것은 기억하실 거 아녜요?

“저는 집안이 어려워서 여기서 초등학교를 안 다녔어요. 중학교는 검정고시를 봐서 들어갔어요.”

- 서울고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 그런 사실은 없어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사실은 있지만.”

- 고등학교를 다닐 때 반 친구들의 나이는요?

“그때 또래가…, 저하고 비슷한 마흔다섯, 마흔여섯살 같은데요.”

- 그렇다면 정회장님도 나이가 그렇게 된다고 보면 되겠네요?

“아뇨. 서른아홉이라니까요.”

정씨의 나이를 둘러싼 불신은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고 심은하 부모는 정씨의 이혼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씨가 미국영주권으로 63년생임을 ‘확인’시켜 주면서 처음으로 이혼남임을 털어놓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적으로는 이혼이 안된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가 현재 가정이 있는 남자가 아니냐고 캐묻자 정씨는 “법적으로 미국과 한국 두 곳에 혼인신고가 되어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혼관련 재판이 끝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은하의 부모는 작년 여름 정씨의 전처(정씨와 전처는 2000년 6월 이혼신고됨)와 장모를 만났다고 한다. 이어지는 심은하의 부모 얘기.

“전 부인이 그러는데 저 사람하고 자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미국에서 혼인신고며 이혼소송을 했느냐’며 오히려 되묻는 거예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당시에 이혼 여부도 확실치가 않았어요.”

당시 심은하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져 묻자 정씨는 “내 말이 진실이다, 내 말만 믿어라. 미국에서의 이혼 소송이 끝났다”며 영어로 된 서류 한장을 건넸고, 한국에서도 이혼신고를 마쳤다며 이혼신고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구청에 제출했다는 이혼신고서는 정씨가 고쳤다는 호적에 맞게 64년생으로 작성되어 있더라고요. 이혼신고서가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다시한번 ‘좋다. 난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제발 당신의 나이와 이혼 여부에 대해 거짓없이 얘기해 달라. 그렇다면 모든 것을 덮어두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자기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겁니다.”

심은하는 “부모님이 전처 가족들을 만나고 온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계속 진실을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자신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겁니다. 사실대로만 고백했다면 전 세상 사람들에게 ‘그래 내가 나이 많은 이혼남을 사귀었어. 남들이 뭐라 해도 난 내가 사랑하니까 결혼할 거야’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날 사랑하기 때문에 속였다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면 아마도 받아들였을 거예요”라고 털어놨다.

속으로 이런 불신과 의혹이 쌓여가는 중에도 두 사람의 결혼은 확정된 사실처럼 계속 언론에 나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엇보다도 ‘9월23일 결혼한다’고 날짜를 못박아 나온 기사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 정회장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면서 어떻게 결혼한다는 기사가 나오게 됐는지 의아하네요.

“줄곧 결혼을 반대했던 엄마가 지난 6월에 두 여동생이 공부하는 프랑스로 갔어요. 그때 ‘결혼에 대해서는 네가 모든 것을 결정해라’ 하셨죠. 그래서 제가 곰곰히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차츰 저 사람이 인간 심은하를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여러번 물어봤어요.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그런데 엄마가 떠난 이후 저 사람이 결혼을 서두르는 거예요. 저한테는 당장 결혼이 먼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를 속이면 안된다. 당신의 과거가 어쨌든 그것을 숨기고 속이고 하는 것은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어요. 1년이 넘도록 수도 없이 그렇게 요구해 왔으니까요.”

- 대놓고 물어보기가 좀 그렇지만, 그러면 은하씨는 정회장을 사랑했나요?

“(정씨를 쳐다보며) 사랑했죠. 사랑했어요. 저한테 한 얘기들이 다 거짓이라 해도 저는 그것마저도 감수할 각오가 돼있었어요. 그렇지만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면 결별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 그래서 ‘모든 것을 참고’ 결혼날짜를 잡았나요?

“저는 저 사람에게 진실한 사랑을 원했는데 저 사람은 줄곧 ‘결혼은 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밀어붙이더니 어느날 갑자기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저한테 통보하는 거예요.”

- 그러면 9월23일은 정회장이 혼자 정한 것인가요?

“9월초쯤에 느닷없이 ‘점을 보고 왔는데 9월23일이 길일’이라면서 날짜를 통보하는 거예요. 비록 마음이 떠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때 사랑했으니 다시 생각해 보자 마음먹었죠. 전 저 사람이 결혼을 밀어붙인다고 할 때부터 ‘이건 아니다. 양가 부모님들이 만나고, 결혼승낙이 나면 그때 가서 날짜를 잡는 게 순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와 결혼하고 싶으면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정식으로 날짜를 잡자. 당신 쪽에서 사주를 보내면 우리 쪽에서 날짜를 잡겠다’고까지 했어요. 결혼하고 싶으면 떳떳하게 사주를 보내라고 몇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끝내 안 보내는 거예요. 그때의 제 심정을 아시겠어요?”

-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결혼을 다시 생각했다고요?

“저 사람이 날짜를 잡았다면서 우리 부모님 의견을 묻겠다고 해 서 엄마가 저 사람을 세번 만났어요. 그런데 9월23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제 생일이에요. 생일에 결혼하는 사람도 있나요? 어쨌든 날짜도 장소도 저 사람이 다 알아서 한 것이에요. 그것을 보니까 ‘저 사람 말이 모두 진실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이 저한테 항상 ‘내 말만 믿어. 내 나이도 믿어.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 스포츠신문에는 결별 보도가 나기 전에 ‘결혼 연기’ 보도가 한차례 나왔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거죠?

“결혼날짜가 언론에 나고 나서 제가 저 사람한테 ‘결혼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저 사람이 ‘기자들이 물으면 결별한 게 아니라 연기했다고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결별하는 마당에 저 사람의 자존심과 체면까지 구기게 할 일은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부탁했어요. 앞으로 기자들에게 결혼과 관련해 아무 얘기도 하지 말아 달라고요. 그런데 자꾸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와요.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 사람한테 먼저 얘기를 하고 언론에 전화를 걸어서 결별 사실을 분명히 알렸어요.”

- 언론에 보도가 안되었어도 9월23일에 결혼식장에 안 가려고 했다는 얘긴가요?

“아예 안 가려고 작정했어요. 날짜가 보도되고 나서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고도 했어요. ‘결혼하고 싶으면 당신 어머니를 모셔 와라. 그분 얘기를 다 듣고 결혼 얘기를 하자’고 했어요. 저 사람은 그런데도 끝내 모시고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당연히 결혼식장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죠.”

만남에서 결별까지, 심은하를 둘러싸고 잇따랐던 소문의 진상은 이런 것이었다. “끝까지 보호해 주려고 했던 내 마음을 저 사람이 더 잘 알 것”이라는 말을 한 뒤 그녀는 정씨를 향해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 내 덕분에 많은 걸 배웠지? 나는 공인이야. 원하든 원치 않든 당신이 나와 결혼하려고 하면 과거쯤은 금방 드러난다는 걸 왜 몰랐어. 내가 부탁했지. 나는 당신이 돈이 있든 없든, 이혼남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진심이었어. 이제 세상 그렇게 살지마.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할게. 연예계를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지마. 내 마지막 충고야.”

심은하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정회장은 그녀가 말을 끝내자 “그래, 고마워”라고 답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는데 진실을 다 털어놓았으면’ 하고 바라는 심은하. 하지만 ‘전혀 진실하지 않았던 게 없었다’는 정호영. 두 사람은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그는 “지금도 은하가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순간 그것은…” 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걸어나갔다.

한때 서로 사랑했다는 두 남녀의 ‘진실게임’은 거기에서 끝났다. 정씨가 떠나고 나서 심은하는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이 이야기도 밝혀둬야 할 것 같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전제해야 될 게 있어요. 제가 저 사람을 만나면서 단 한번도 저 사람이 돈이 얼마나 있나 하는 점을 따져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외람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돈이라면 저도 벌 만큼 벌 수 있잖아요. 저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저는 돈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이 없어요. 저는 오로지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사랑을 앞세웠어요. 그런데 저 사람하고 우리 집 사이에, 차마 말하기 힘든 부끄럽고 치사한 일이 있었어요.”

기자가 “돈 얘기로 치사한 일이라면 정회장으로부터 결혼을 조건으로 돈이라도 받았다는 것인가” 하고 묻자, 옆에 있던 어머니 고경희씨가 나섰다.

“작년에 은하가 정회장하고 미국에 갔다는 기사가 나오고 나서 얘(심은하)가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어요. 당장 모델로 출연하던 회사에서 (회사와 제품 이미지를 망쳤다며) 손해배상소송을 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요. 그러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정회장이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은하가 나 때문에 일도 못하게 되고 손해를 입게 됐으니 결혼과 상관없이 이러저러한 걸 해주겠다’면서 혼자 뭘 쓰는 거예요. ‘확약서’라고 쓰고는 ‘첫째, 논현동 집을 주겠다. 둘째, 현금으로 5억을 주겠다. 셋째, 프랑스에 가 있는 동생들 교육은 내가 책임지겠다’ 등등 6가지를 쓰더라고요. 얼마나 황당해요. 누가 보면 내 딸자식 돈 받고 시집보낸다는 말 듣기 딱 좋은 짓 아녜요. 안된다고 했죠. 우리 생각에는 ‘우리가 교제를 반대하니까 환심을 사려고 이러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절대 받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정회장 회사 직원이 와서는 무슨 무슨 서류를 떼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얘 아빠가 서류와 인감도장을 줬어요. 너희들이 다 알아서들 하라고. 얼마 후에 얘 아빠 앞으로 명의가 이전된 다가구주택 집문서를 가져왔어요. 말하자면 그 집을 얘 아빠가 사들인 것처럼 해서 갖다 준 거예요. ‘집을 한 채 줬다’ 이거였죠. 돈도 5억을 보내고. 나 참.”

- 안 받겠다는데도 강제로 줬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요.

“나중에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다시 등기를 옮겨가라’고 했는데도 그냥 방치해 둔 거예요. 돈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차일피일 하는 터에 제가 결별하기로 결심했죠. 생각해 보니까 그 집을 그냥 그렇게 아빠 이름으로 등기를 해놓으면 꼴이 우습게 돼버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일 먼저 그 집을 빨리 되찾아 가라고,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부모님들이 그 사람한테 여러번 가져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처음에 그 사람이 등기권리증을 갖다놓고 돌아갔을 때 ‘꼴도 보기 싫다’면서 서랍 속에 휙 처넣어 버렸거든요. 자세히 안 보고요.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어요.”

심은하는 결별 사실을 언론에 알린 뒤 제일 먼저 정씨에게 ‘그 집을 돌려줄 테니 찾아가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정씨는 10월13일 자신의 대리인을 심은하측에 보냈다. 대리인은 자신을 ‘장애인 복지재단’ 관계자라고 소개했다. 정씨는 지난해 5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재 2백억원을 털어 장애인복지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어머니 고씨에 따르면 대리인은 바로 이 복지재단의 관계자 이모씨였다는 것. 어머니 고씨가 정씨에게 그 집을 돌려주기 위해 (명의이전을 위해) 그의 대리인과 함께 법무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심은하측으로서는 깜짝 놀랄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어머니 고씨의 이야기.

“법무사 얘기가 ‘이 등기권리증은 애당초 매매든 뭐든 어떤 거래도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 등기권리증의 명의이전을 하려면 서류 4가지가 더 필요한데 그게 구비돼있지 않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처음부터 저 사람이 우리한테 집을 넘긴다고 하면서도 행여 나중에 우리가 그 집을 다른 데 팔까봐 미리부터 손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그 집에 거액의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어요. 시가 7억원 상당으로 알려진 이 집에 (집을 넘겨줄 당시) 5억4천여만원의 근저당설정이 돼 있었던 겁니다. 근저당 설정된 것 제하고, 또 다가구라 전세금 다 빼주면 그 집은 사실상 재산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었어요. 그런 집을 우리한테 준다고 넘긴 거죠. 어찌됐든 그냥 그대로 명의이전을 해서 집을 돌려주면 우리야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돌려줄 수도 없게 돼 버렸어요.”

이유는 간단했다. ‘매매’ 형식으로 그 집을 다시 정회장에게 넘길 경우, 심은하 부친이 집을 소유한 기간이 1년이 채 안돼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말하자면 심은하측으로서는 정회장에게 집을 돌려주면서 공연히 거액의 생돈을 물어야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고씨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법무사에게 조언을 구하자, 법무사는 복지재단 같은 곳에 기증할 경우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에 고씨는 정씨의 대리인 이씨에게 “당신의 복지재단에 넘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아직 복지재단이 설립되지 않았다고 했고 이에 고씨는 복지재단이 설립되면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법무사 사무실을 나왔다고 한다(이씨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지난 10월 중순에야 복지재단 설립을 위한 관련 서류를 노동부에 접수시켰다고 했다).

결국 심은하측은 집 한채와 현금 5억원을 ‘정회장으로부터 받아’ 소유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법무사 사무실에서 돌아왔는데 며칠 있다가 정회장측에서 근저당설정된 돈을 다 갚았다는 연락이 왔어요. 지난 10월24일자로 그렇게 했대요. 이미 그 사람과 우리 딸의 관계가 다 끝난 마당이잖아요. 그런 터에 그런 연락을 받으니 당장 걱정부터 앞서는 거예요. 그것을 빌미로 또 우리 은하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을까, 걱정이 돼서 오늘 아예 그 얘기까지 다 하는 거예요. 아직까지 돈 5억도 안 찾아가고 있는 걸 보니 다른 속셈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머니 고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심은하의 집 거실에서 전격적인 ‘만남’이 있은 지 보름이 지난 11월18일 오전, 정호영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씨가 없는 자리에서 심은하가 밝힌 논현동의 집과 현금 5억원을 정씨로부터 받았다는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 어떤 반론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사실 확인차원’이라며 재차 “돈을 건넨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는 “없어요. 돈 같은 거 건넨 적 없어요”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지난 2년간은 내가 ‘나’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11월3일)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었던가’라고 생각하면서 반성했어요. 내가 서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서 서성거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어떤 면에서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미련을 지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은하를 사랑했기에 약간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 정리하고 미국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나는 나 혼자만의 사람이 아닙니다. 공장 식구들도 있고…. 2년 만에 처음으로 공장에 내려갔다 와서 ‘내가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구나’라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기자가 “논현동 집을 심은하측에 ‘매매’형식으로 넘겨주었음을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했다”며 다시 물었지만 정씨는 “그런 사실이 절대 없다”고 못박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오후 다시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과 돈 문제를 만나서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 11월3일 ‘4자간 만남’에 대해 반론을 듣고 싶다”고 요구해, 저녁 7시 그의 집에서 정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음과는 달리 집의 등기권리증을 넘겨준 것을 인정했다.

- 논현동 집의 등기부등본에는 정회장이 심은하 아버지에게 명의이전을 한 것으로 나와 있던데요.

“그런 게 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한때는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했어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자였어요. 이제 다 끝난 마당에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내가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 대가를 치렀다, 뭐 그에 대한 정신적인 대가가 될 수도 있을 거고….”

- 심은하측은 논현동 집을 건넬 때 거액의 담보가 설정되어 있었다고 주장을 하고, 실제 등기부등본상에도 그렇게 기재되어 있는데?

“담보설정이 되어 있던 것은 맞아요. 은하쪽에 건넬 때는 일부 갚고 2억2천만원이 남아 있었어요. 지난 10월24일에 갚았는데, 돈을 중간에 갚았다고 해서 근저당권 설정이 해지되지는 않아요. 전부 갚아야 근저당권 설정이 해지되잖아요. 그렇게 된 거예요. 더 이상 그런 것들이 왜 오고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씀드리고 싶지 않아요.”

- 심은하측에서는 논현동 집과 돈을 가져가라고 했다는데?

“집을 돌려준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설립하는 복지재단으로 넘기라고 하면서 재단의 관계자 이씨를 대리인으로 보냈는데 관련 서류가 부족해서 며칠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해요. 심은하측에서 이씨에게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는 거죠. 그리고 등기권리증에서 중요한 서류 4장이 빠진 것도 ‘제가 일부러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서류를 빼고 줬다’는 것인데, 그 일은 저희 회사 부동산담당 직원이 처리를 했어요. 그렇지만 그 서류가 빠져있다고 해도 본인(심은하의 아버지)의 인감을 찍어주면 거래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알고 있어요. 집을 넘겨준 것도 그쪽에서 인감증명과 인감도장 등을 주지 않았으면 등기를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전 그걸 돌려받을 생각이 없어요. 좀 전에 말한 대로, ‘내가 한 행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그래서 근저당 설정도 해지를 한 거고요.”

- (심은하 가족이) 많은 돈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사실은 없어요.”

지난 11월3일 ‘4자간의 만남’에서 오간 이야기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없느냐”고 하자 “심은하가 다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답변을 회피했다. 심은하가 주장하는 정씨의 나이, 이혼 여부 등에 얽힌 결별 원인에 대해서는 “상대방(심은하)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다. 정말 ‘단순히 호적을 고쳤다’는 것만이 문제가 되어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겠는가? 이 부분도 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여운을 남겼다.

또 당시 정씨가 마지막까지 나이를 “39세”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다시 묻자 “거짓말도 상대방의 공격을 받으면 오기로라도 진짜라고 말하는 것이 남자의 심리다. 당시 상황에서 남자의 오기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며 “나이나 그 외의 것들에 대해 심은하가 다 말하지 않았느냐”고 해명했다.

정씨는 마지막으로 “은하씨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업에만 열중하겠다”며 11월23일 잠시 미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글·김순희<여성동아 리포터>
사진·동아일보 사진DB 파트

기사 입력시간 : 2001.12.3

매미 노래 함부로 대하지 말라.

매미가 아침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어댄다. 본능에 따라 짝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듣기에는 너무나도 필사적이다. 남아 있는 생명의 시간이 절박해서 일까?

6~10년의 세월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밖으로 나와서는 길어봐야 고작 한달,
짧으면 1~2주일을 보내는 그 찰나와 같은 절정의 시간을,
매미는 치열하게 자기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요즈음은 매미소리를 공해로 까지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평생을 살면서 한달에
1주일의 절정이라도 있으다면 그걸 그대로 넘기겠는가라고 묻고 싶다.

세상에 나와 얼마 못 있어 거미줄에 걸려 거미의 먹이가 되고 마는 매미도 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울다가 제 수명을 다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여름이 지나면 속이 말라버린 채 뒹구는 매미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그러나 그건,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에 최선을 다한 곤충의 인생을 보여주는
자취이기에 마구 대할 수 없다.

매미소리 없는 여름은 얼마나 더운가?
벌레 앞에 풀 자 하나 붙이면 그건 어느새 벌레가 아니라 운치 있는
음악이 된다. 그처럼 매미는 전 생애를 통해 모은 기력으로 이여름의 무더위와
온몸이 내는 악기소리로 싸워주고 있따.

어느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했다. 네가 언제 누구에게 연탄불 한번
되어 준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성서의 예언자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은 마음을 예찬한다.

우리 언제 한번, 강가의 갈대가 되어 바람소리 들려 준 적있으며 누구에게 길 밝히는 등불이
되어 준 적 있더냐? 그와 다를 바없이, 생애 1주일이라도 목 놓아 누군가를 위해
혼신으로 노래 불러 본적 있었는가?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님

꿈이 클수록 뇌가 활성화된다

2009년 2월 18일(수) 오후 11:32 [대전일보]

꿈이 클수록 뇌가 활성화 된다

얼마 전 김연아 선수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세계 1위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뇌에 또 한 번 희망을 선물했다.

사람이 크고 가치 있는 꿈을 추구할수록 사람의 두뇌운영시스템(Brain Operating System)이 더 잘 작동하며, 그 사람의 인생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의 꿈은 국민들의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꿈은 뇌를 100% 가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단순히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뇌는 부분적인 능력밖에는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기적이고 대립적인 정보는 에너지 파동을 약화시키고 뇌가 통합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성공을 추구하더라도 어떤 성공인지,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에 따라 사람은 우주로부터 양동이만큼 작은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고, 바다처럼 거대한 양의 에너지를 철철 넘치도록 받을 수도 있다.

뇌는 당신의 꿈이 크고 밝을수록 더 활성화된다. ‘꿈이 밝다’는 것은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에게 좋은’ 홍익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뇌를 잘 경영하기 위해서는 삶의 목적과 가치를 욕망에서 완성으로, 지배에서 존중으로, 경쟁에서 화합으로, 소유에서 관리로, 사익에서 공익으로 바꿔야 한다.

강호순 사건처럼 인간성 상실현상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것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간기본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꿈과 희망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홍익정신교육과 인성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기 때문에 인간존중사회를 위한 기초는 인성교육이며, 홍익인성교육이 바로 뇌교육이다.

뇌가 지배, 경쟁, 소유,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육체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감정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항상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질 것을 요구하고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인체에서 제일 중요한 조화와 균형이 깨진다.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면 육체는 물론,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건강까지 해친다.

우리 뇌의 뇌간에는 거대한 생명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큰 생명의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당신도 할 수 있고, 당신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뇌간이 말하는 ‘나는 할 수 있다’와 표면의식에서 말하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표면의식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내가 너보다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 뇌를 혼란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뇌에서는 항상 '나는 잘 해'와 '너는 못해' 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들리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마음의 평화가 없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전한 자신감을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뇌 속에 잠들어 있는 나머지 95%의 잠재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표면의식의 수준일 때, 즉 너와 내가 다른 차원에서는 뇌가 5%의 기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나머지 95%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는 너와 내가 하나로 통합될 때 가능하다.

물론 처음에는 표면의식 차원에서의 자신감도 필요하다. 이것을 키워서 한계를 뚫고, 뚫고, 또 뚫으면 뇌간의 본질적인 자신감, 즉 물개가 태어날 때부터 헤엄을 치듯 원시정보로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자신감은 오감에서 전달되는 어떤 정보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바라보지만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결코 없다. 뇌의 원리를 아는 사람들의 자신감은 절대적이다.

‘안 되는 건 없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실패는 없다. 이것도 성공하는 과정일 뿐이다’라는 신념화된 정보가 내면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모든 일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된다’고 하니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니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뇌의 가치와 원리를 알고 그것을 잘 활용한다면 생활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창조할 수 있고, 물질적인 가치에 매몰된 삶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과 행복, 평화를 위해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일에도 삶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승헌<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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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penace@dinz.net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진정한 인간은 성장을 포기하고 조화라는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다. 이런 인간은 아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인간은 원숭이와 진정한 인간을 잇는 중간적 존재가 아닐까."

'뇌'와 '개미', '파피용'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 씨는 30일 오전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월드사이언스포럼 2008 서울' 특별강연에서 인간 의식의 발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강연은 1천500여명이 강연장을 채우고 830여명이 또 다른 강연장에서 화면으로 강연을 지켜보는 가운데 베르베르 씨의 강연과 청중과의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베르베르 씨는 침팬지와 사람에 대한 실험과 인공지능, 영화 '2001 오디세이' 등을 예로 들며 인간 지능의 장점과 불완전성, 컴퓨터 또는 로봇과의 차이 등을 설명하며 뇌와 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개했다.

그는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또는 로봇을 구분해주는 것은 감정적인 면일 것"이라며 "사람이 컴퓨터 등 기계와 가장 많이 다른 점은 유머와 사랑, 예술 등의 측면"이라고 말했다.

농담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생식의 욕구를 넘어서는 순수한 사랑, 생존과 관계가 없이 미를 추구하는 예술은 신경과학자들의 뇌 연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컴퓨터는 분명히 계산이나 기억용량은 인간보다 훨씬 우세하지만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며 의식은 아직 많이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의 습관과 전통이 인간의 의식을 축소하고 제약한다며 이제 이런 요소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야망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라고 강조했다.

베르베르 씨는 진짜 똑똑한 뇌는 자신만을 위해 기능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든 생명체와 하나가 돼 작동하는 뇌라며 서로 자동으로 교감할 있는 의식을 갖출 때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미는 자신을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세포로 여기고 개미집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죽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외부 침입시 거리낌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며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영생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인간도 언젠가 그런 지혜를 얻어 성장을 포기하고 조화라는 진정한 의미를 추구할 만큼 똑똑해지기를 바란다며 그런 의식을 가진 진정한 인간은 아직 지구에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인간의 원숭이와 진정한 인간을 잇는 중간적 존재가 맞는게 아닐 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간의 뇌는 의식을 우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저마다 의식을 확장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며 우리 손자나 그 후에는 그런 인간의 등장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베르베르 씨는 이어 질의 응답에서 자신이 했던 실수를 묻는 질문에 자신은 하고자 했던 것에서 대부분 실수를 해온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하고 넘어졌을 때 일어나 다시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뇌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베스트셀러를 내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게 즐거워 글을 쓴다"며 "저마다 좋아하는 분야를 하나 찾아 매일 규칙적으로 그 일을 하고 그 지평을 조금씩 넓히다 보면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citech@yna.co.kr

'내가 모르고 있었던, 원래부터의 내친구'를 만나기 위한 여행



열흘짜리 배낭여행 中

왠지 스토커 갔지만 축하 한다 미선아 ..

이제 싸이질 그만 하고 블로그질 하는거다? 응?

그리고 블로그 및 호스팅 사용료는 여자친구 소개해주는것으로 대신하는거다? 알찌?

치혀니도 옆에서 나도 나도 하고 있는데 신경쓰지 말고 나만 해주면 되~! 알찌 ? (응?)

그럼 즐 블로그~

잇힝~

TAG 므흣, 잇힝